1464년 늦은 봄, 강원도 평창 깊은 산속
조선의 7대 왕 세조가 오대산 상원사를 찾았다.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뒤 심한 피부병에 시달리던 세조는 이곳 상원사 계곡에서 문수보살을 만나 병이 나았다는 경험이 있었다.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절을 중창하고 참배를 하러 온 것이었다.
문수전 앞.
세조가 법당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갑자기 고양이 두 마리가 나타났다.
“야옹- 야옹-”
고양이들은 세조의 곤룡포 자락을 입으로 물고 늘어졌다. 한 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옷자락을 물고 늘어진 고양이
왕이 법당에 들어가려 하는데 고양이가 옷을 물고 늘어진다?
평소 같았으면 쫓아냈을 일이다. 하지만 의심이 많기로 유명했던 세조는 직감적으로 이상함을 느꼈다.
“법당 안을 수색하라.”
세조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리고 곧, 문수전 불단 밑에 숨어 있던 자객이 발견되었다.
세조를 암살하려던 자객은 왕이 법당에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고양이들이 막지 않았다면, 세조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목숨을 구한 세조는 깊이 감동했다.

왕이 고양이에게 내린 상
세조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고양이들에게 파격적인 보상을 내렸다.
첫째, 상원사에 밭 500마지기를 하사했다.
이 땅을 ‘묘전(猫田)’, 즉 ‘고양이 밭’이라고 불렀다. 이곳에서 수확한 쌀은 ‘고양이 쌀’이라 불렸고, 상원사의 고양이들을 먹이는 데 쓰였다.
둘째, 고양이 석상을 만들어 문수전 앞에 세우게 했다.
돌로 만든 두 마리의 고양이상. 왕의 목숨을 구한 영웅을 기리는 석상이었다.
셋째, 왕명으로 고양이를 함부로 죽이지 못하게 했다.
서울 근교 사찰들에도 묘전을 하사하여 고양이들을 보호하도록 했다.
한낱 짐승에 불과한 고양이에게 땅을 하사하고 석상까지 세운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세조에게 그 고양이들은 단순한 짐승이 아니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었다.
1465년, 상원사 중창
세조는 이듬해인 1465년 상원사를 대대적으로 중창했다.
혜각존자 신미를 비롯한 고승들이 참여했고, 세조는 쌀, 무명, 베, 철 등을 보냈다. 왕실의 지원 아래 상원사는 화려하게 재건되었다.
세조의 왕사였던 신미가 쓴 『상원사 중창권선문』에는 이 과정이 한문과 한글로 함께 기록되어 있다. 이 문서는 현재 국보로 지정되어 월정사에 보관되어 있는데, 가장 오래된 한글 필사본으로도 유명하다.
1469년, 상원사는 세조의 원찰(願刹)이 되었다. 왕실의 명복을 비는 특별한 절로 지정된 것이다.

600년 가까이 지나도록 남아있는 석상
그로부터 6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2025년 현재.
강원도 평창 오대산 상원사 문수전 앞에는 여전히 그 고양이 석상 한 쌍이 서 있다.
세월이 흘러 표면이 닳고 이끼가 끼었지만, 두 석상은 변함없이 문수전을 지키고 있다. 마치 지금도 절을 찾는 사람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려는 것처럼.
요즘 상원사는 ‘고양이 절’로도 유명하다. 실제로 절 안팎에는 많은 고양이들이 살고 있다. 관광객들은 고양이 석상 사진을 찍고, 살아있는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준다.
한 쌍의 석상에는 전용 조명도 설치되어 있고, 주변에는 꽃밭도 조성되어 있다. 처음에는 그냥 굴러다니던 석상이었는데, 어느새 조각된 기단 위에 올라가고 조명까지 받게 된 것이다.
고양이일까, 사자일까?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이 석상이 실제로는 ‘사자상’이라고 주장한다. 자세히 보면 한쪽 석상의 목 부분에 갈기 같은 것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불교 사찰에서는 전통적으로 사자상을 세워 법당을 지키게 했다. 하지만 실제 사자를 본 적 없던 조선시대 장인들이 불경의 묘사만 보고 만들다 보니 고양이처럼 보이는 사자상이 만들어졌다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세조를 구한 것도 사실은 사자였을까?
아니면 사자상을 만들려다 우연히 고양이처럼 만들어졌는데, 후대 사람들이 세조를 구한 고양이 석상이라는 전설을 붙인 걸까?
진실이 무엇이든, 중요한 건 6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는 사실이다.
세조가 정말 상원사에 갔을까?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있다.
조선시대 왕은 전쟁이 아니면 도성 밖 80리를 나가지 않는 것이 법도였다. 하물며 험준한 태백산맥을 넘어 강원도까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세조가 상원사를 방문한 것 자체는 사실로 보인다.
조선왕조실록에 명확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조 12년(1466년) 윤3월 17일. 세조는 상원사에 도착해 상원사 중창을 기념하는 별시(과거시험)를 치르게 했다. 신숙주, 한계희, 노사신 등이 시험관으로 참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세조가 직접 피 묻은 적삼을 입고 상원사를 방문했다는 유물도 남아 있다. 『평창 상원사 중창권선문』이라는 국보급 문서에도 세조의 방문과 중창 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세조가 상원사에 간 것은 분명하다.
다만 고양이(혹은 사자)가 암살을 막았다는 이야기는 전설일 가능성이 높다. 왕실의 불교 지원을 정당화하고, 상원사를 특별한 절로 만들기 위한 이야기였을 수도 있다.
전설이든 사실이든
사실이든 전설이든, 이 이야기는 600년 가까이 살아남았다.
그리고 지금도 상원사 문수전 앞에는 두 마리의 석상이 서 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이 석상을 보며 “왕의 목숨을 구한 고양이”를 기억했다. 현대의 고양이 집사들은 이 석상을 보며 “고양이도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한다.
어쩌면 그게 이 전설의 진짜 의미일지도 모른다.
한낱 짐승이라고 무시받던 고양이가, 왕의 목숨을 구하고 땅을 하사받고 석상으로 남았다는 이야기.
작고 약한 존재도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메시지.
그리고 그 메시지는 600년이 지난 지금도, 상원사 석상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참고
상원사는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에 위치해 있으며, 월정사에서 약 9km 떨어진 곳에 있다. 고양이 석상은 문수전 앞 계단 옆에서 볼 수 있다. 상원사에는 신라시대 동종(국보 제36호), 문수동자상(국보 제221호) 등 귀중한 문화재도 많이 소장되어 있다.
본 사례는 구전된 실화에 기반하되, 일부 세부 정보는 출처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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