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적 만남
날씨가 추웠다.
금방이라도 눈이 올 것 같은 어느 해 11월의 끝자락.
그날은 수요일이었고 지방에서 근무하고 있던 나는 수요예배를 드리러 시골 교회로 갔다. 교회 식구들이 지나가는 말로 사고가 난 흰 강아지를 근처에서 자주 보았다고 했다. 벌써 그 얘기를 들은 지 2주쯤 됐다. 그날은 목사님도 설교 말미에 잠시 그 언급을 하셨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강아지를 키우는 나는 그 소리를 자주 듣자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혹시 요즘도 돌아다녀요?”
“아마도 사고가 나서 죽었든지 살았다면 요 근처에 있을지도 몰라요.”
“그래요? 본 사람 있어요?”
난 왜 자꾸 그런 질문을 하는지 책임질 일도 아니면서 꼬치꼬치 묻는게 스스로도 이상했다.
“낮에 교회 앞 도랑에 있는걸 봤어요.”
“그래요, 지금도 있을까요? 어디 가서 한번 봅시다”
예배가 끝나자 바로 교회 앞에 있는 작은 논두렁 도랑으로 나가보았다.
“저기 있어요! 하얀 게 보이죠?”
어두웠지만 도랑 아래 흰 물체가 보였다.
묻지도 않고 달려가 보았다. 하얀 강아지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안아보니 너무 가벼웠고 갈비뼈만 손에 잡혔다. 못 먹어서 뼈만 앙상하게 남았고 얼굴은 지저분한 흰 털로 거의 눈이 보이지 않았다. 입은 무엇인가 먹기 위해 아무거나 뒤졌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시커먼 모습이었다. 다리는 사고가 나 휘어 있었다.
“혹시 박스 같은 거 있으면 하나 주세요.”
목사님이 작은 종이박스를 가져다 주셨다.
’그래, 그래 가만히 있어라. 내가 어떻게 해 주마. 에이 불쌍한 녀석!‘

사택으로 데려오다
녀석을 박스에 넣고 차 뒤에 실은 후 거기서 가까운 시내로 달렸다. 녀석이 그때서야 신음을 했다.
“끄응”
그때까지 아무 소리도 내지 않던 녀석이었다. 추운데 있다가 차 안이 따뜻해지니 그때서야 아픈 몸이 반응을 한 것 같았다. 게다가 아마도 낯선 사람을 만나 경계심 때문에 긴장하고 있다가 따뜻한 차 안에서 긴장이 풀리자 그때서야 배고픔과 아픔이 몰려왔던 것 같았다.
”많이 아프고 배고프겠구나. 그래 기다려봐라.”
일단 급한 것이 먹을 것이었기 때문에 동물 사료를 파는 가게를 찾았다. 하지만 시간이 저녁 10시가 가까웠던 터라 모두가 문을 닫고 불이 꺼진 상태였다.
할 수 없이 녀석을 내가 거처하는 사택으로 데리고 갔다. 혼자 있는 데다 방이 좀 추워서 전기난로로 주위를 따뜻하게 하고 먼저 녀석의 상태를 보았다.
하얀 강아지 말티즈로 치아를 보니 2-3년 정도 된 강아지로 보였지만, 오랫동안 밖에서 나다녀서 털이 지저분하고 엉망이었다. 뒷다리는 사고로 부러졌는지 질질 끌고 다녔다. 온몸엔 검은 반점이 군데군데 있어서 노견처럼 보였다. 일단은 먹을 것을 준비해야 했다.
운동하면서 먹으려고 냉장고에 넣어놓은 닭가슴살 통조림을 뜯어 밥을 섞어 물에 말아 녀석 앞에 내밀었다. 녀석은 정신없이 먹어댔다. 한 그릇을 금방 비우더니 나를 또 쳐다봤다.
“더 달라고?”
다시 또 한 그릇을 내밀었다. 또 금방 먹어 치우더니 배가 채워졌는지 거실에 몸을 질질 끌고 다니며 오줌과 똥을 막 배설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몇 주간 음식을 못 먹다 음식이 들어오니 속이 난리가 난 것 같았다. 일단 청소부터 하고 녀석을 화장실로 데려가 씻기기 시작했다. 털이 엉켜서 제대로 씻겨 줄 수도 없었다. 강아지 목욕솔이나 용품도 없어서 대충 씻기고 말린 후에 전기난로 옆에 뉘었다. 그때서야 녀석이 반듯하게 누웠다.
이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급히 데려오긴 했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서울 집에 녀석과 같은 말티즈와 푸들이 있었기에 녀석까지 거둬들여 키우기에는 부담이 됐다.
‘괜히 내가 데려왔나. 그냥 못 본 체 했으면 이런저런 걱정할 필요도 없는데… 참, 너는 오지랖도 넓다. 사람들이 보고도 안 챙기는 이유가 다 있어. 이런 뒷감당 때문인 거야. 넌 그래서 엉뚱한데 시간 다 쓰고 쓸데없이 돈 들여가며 인생 허비하고 사는 거야’
속에서 이런저런 소리들이 아우성을 쳤다.
그런데 이미 현실이 되었고 녀석의 눈망울을 보니 이젠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어찌 됐든 지금으로선 빨리 주인을 찾아줘야 했다.
인터넷 반려동물 사이트에 올리고 도시 가까운 곳에 있는 반려동물 단체에 등록했다. 하지만 연락이 없어서 할 수 없이 서울에 있는 아내에게 SOS를 보냈다.
아내는 소식을 듣자마자 다음 날 내려오겠다고 했다. 평소 남편이 이사를 해도 내려오지 않던 아내였다.
저녁 늦게 나는 침대에서, 녀석은 아래 난로 옆 수건으로 푹신하게 깔아준 작은 이불 위에서 자기 시작했다.
자다가 일어나 녀석을 바라보면 녀석도 일어나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기를 몇 번, 그렇게 첫날밤은 흘러갔다.
다음 날 아침, 똑같이 녀석에게 밥을 주고 회사로 출근하려고 하는데 녀석이 박스를 넘어뜨리고 몸을 질질 끈 채로 바닥에 닿은 꼬리를 억지로 흔들며 나를 따라왔다. 아마도 저를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얘야, 난 회사 출근해야 해. 좀 있으면 널 돌보는 사람이 올 거야. 기다려?”
다시 녀석을 박스 안에 넣어놓고 출근했다. 회사에서도 계속 녀석이 어떻게 있는지 걱정이 되었다.

아내가 녀석을 병원으로…
다음 날은 눈이 많이 내렸다.
전날 녀석을 수습하지 못했다면 아마 얼어 죽었을 터였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아내가 강아지 둘을 데리고 사택에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도착해 보니 녀석이 박스에서 나와 문 앞에 있더라는 것이었다. 밖에서 강아지 소리가 나니 그랬던 모양이었다.
녀석을 본 아내는 거실에서 한참 동안 녀석의 항문을 짜내 대변이 나오는데 끝없이 나오더라고 했다. 처음엔 딱딱해서 거의 파내다시피 했다고 한다. 몇 날 며칠 먹은 게 없어 속에 있는 것들이 굳어 이제 먹은 것들이 빠져나오지 못하니까 항문이 제 구실을 못했던 것 같다고 했다.
일단 녀석을 시내 동물병원으로 데려갔다.
수의사 병원장은 엑스레이를 보더니 뒷다리 두 개 모두 뼈가 으스러지고 부러졌다고 하면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아내가 내게 연락을 했다.
“얼마나 든대?”
“120만 원 드는데… 이거 어떡해야 해?”
“사정을 이야기하고 좀 깎아달라고 해봐. 돈 많이 들면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안락사시키는 곳에 보내야 한다고 “
아내는 원장에게 얘기해서 반값으로 60만 원에 수술하기로 하고 수술에 들어갔다.
그렇게 녀석은 제2의 삶이 시작되었다.
수의사는 녀석의 치아를 보더니 2년 정도 된 강아지로 보이고 검은 반점은 음식을 아무거나 주워 먹어 생긴 것으로 나중에 없어질 거라고 했다고 한다.
수술을 마친 후 아내는 어차피 우리가 녀석을 거두기로 하고 서울로 데려간다고 했다. 부담은 되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 눈망울이 우리를 붙잡는 마력이 있었고 녀석은 우리 식구가 될 운명이었다.
이름을 지어야 했다. 내가 일방적으로 지었다.
‘또랑이’
물이 있는 논두렁 풀숲 도랑에서 건져 올린 녀석이기에 사투리로 도랑을 ’또랑‘으로 불러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
‘너는 지금부터 또랑이, 줄여서 랑이야!’
- 2부에서 계속…
#반려동물구조 #수렁에서건지다 #강아지 #또랑이 #랑이 #생명구원 #강아지수술 #말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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