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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스토리

개 오(獒), 나무 수(樹) : 800년 전 한 마리 개가 남긴 지명의 비밀

by 캣츠닥스 2025.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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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고속도로를 달리다 ‘오수휴게소’를 본 적이 있다면,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
혹시 이 지명이 왜 ’오수(獒樹)’인지 궁금해본 적 있나요?
많이 들어보셨을겁니다. 초등 교과서에도 나왔으니까요.
오늘은 좀 자세하게 파헤쳐봅니다.

오수(獒樹) : ‘개 오(獒)’자, ‘나무 수(樹)’자


직역하면 ‘개나무’라는 뜻입니다.
도대체 개와 나무가 무슨 관계일까요?
그 답은 800년 전,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오수 ‘의견비‘. *이미지 출처 : 지역N유산

1230년, 고려 문인 최자가 기록한 이야기


고려 중기의 문인 최자(崔滋, 1188~1260)가 쓴 《보한집(補閑集)》.
그 안에 짧지만 강렬한 한 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 金蓋仁居寧縣人也. 畜一狗甚怜

(김개인은 거령현 사람이다. 한 마리 개를 기르는데 매우 사랑스러웠다.)

김개인(金蓋仁)
고려시대 거령현(현재 전북 임실군 지사면 영천리)에 살던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충직하고 총명한 개 한 마리가 있었죠.
품종은? 기록에 없습니다. 이름은? 역시 없습니다.
다만 한자로는 ’개 오(獒)’자를 썼는데, 이는 사람에게 잘 길들여진 큰 개, 4척(약 120cm) 이상의 대형견을 특별히 가리키는 표현이었습니다.
어느 날, 김개인은 동네 잔치에 초대받았습니다.

그날, 개는 왜 따라나섰을까


평소와 달리 그날 개는 유독 주인을 따라나섰습니다.
집을 나서는 김개인의 발걸음을 따라, 잔치가 열리는 마을까지 함께 걸었습니다. 왜였을까요? 본능적으로 무언가 느꼈을까요?
잔치는 흥겨웠습니다.
술이 돌고, 노래가 이어지고, 김개인은 평소보다 훨씬 더 마셨습니다. 완전히 만취한 그는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던 중, 오늘날의 오수면 상리 부근 풀밭에서 그만 쓰러져 잠들고 말았습니다.
개는 주인 곁을 지켰습니다.
가을이었을까요, 봄이었을까요. 계절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그날 들불이 일었다는 것입니다.
건조한 풀밭에 불씨 하나가 떨어졌고, 바람을 타고 번진 불은 순식간에 주변을 집어삼키기 시작했습니다.
김개인이 누워 있는 곳으로, 불길이 다가왔습니다.

개울과 불길 사이, 수백 번의 왕복


개는 먼저 주인을 깨우려 했습니다.
짖어보았습니다 → 깨지 않았습니다. 옷을 물고 흔들어보았습니다 → 여전히 깨지 않았습니다. 발을 핥아보았습니다. → 김개인은 곯아떨어져 있었습니다.
불은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그때 개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근처 개울로 뛰어들었습니다. 몸을 흠뻑 적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불길 쪽으로 달려가 자신의 몸으로 불을 덮었습니다.
지글지글. 털이 타는 냄새. 찌릿. 화상이 피부를 파고드는 고통.
하지만 개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시 개울로. 다시 불길로. 다시 개울로. 다시 불길로.
《보한집》의 원문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참 이 모습이 가슴 아프지만 의로운 개를 보면 정말 사람보다 낫단 생각을 자주 합니다.

✅ 狗乃濡身于傍川, 來往環繞以潤著草茅, 令絶火道

(개가 곁의 시냇물에 몸을 적셔, 왕래하며 둘러서 풀을 적셔 불길을 끊었다)

몇 번을 왔다 갔다 했을까요?
10번? 20번? 50번?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개는 마지막 숨이 끊어질 때까지 주인 주변의 불을 껐다는 것입니다.

氣盡乃斃 (기운이 다하여 마침내 죽다)

불은 꺼졌습니다.
김개인은 살았습니다.
개는 죽었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김개인이 본 것


술에서 깨어난 김개인은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사방이 시커멓게 탄 흔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누워 있던 주변만큼은 불에 타지 않았습니다. 마치 누군가 그 부분만 보호한 것처럼.
그리고 그곳에, 그을리고 화상 입은 채 숨이 끊어진 개가 누워 있었습니다.
김개인은 울었습니다.

✅ 盖仁旣醒, 見狗迹悲感, 作歌寫哀

개인이 깨어나 개의 자취를 보고 슬퍼하며 노래를 지어 애도했다.

지팡이가 나무가 되다


김개인은 개를 정성껏 묻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무덤 앞에 자신의 지팡이를 꽂았습니다. 개를 잊지 않겠다는 표시였을까요? 아니면 이곳을 기억하기 위한 표지였을까요?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지팡이가 뿌리를 내리고 나무로 자라난 것입니다.

植杖以誌之

‘지팡이를 꽂아 표시했다‘

훗날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기억하며 이곳을  “오수(獒樹)”라고 불렀습니다.
큰 개 ‘오(獒)’나무 ‘수(樹)’
개가 나무가 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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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800년의 기억


1200년경, 고려의 대문호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남원으로 가던 중 오수역(獒樹驛)에 들렀습니다.
그리고 누각 벽에 붙은 시를 보고 차운시를 남겼습니다.
이미 그때, 오수의 개 이야기는 유명했던 것입니다.
1230년, 최자는 《보한집》에 이 이야기를 기록하며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人恥平爲畜 公然負大恩主危身不死 安足犬同論

사람은 짐승이라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면서 공공연히 큰 은혜를 저버린다네. 주인이 위태로울 때 주인을 위해 죽지 않는다면 어찌 족히 개와 같다고 논할 수 있겠는가.


이 시는 묻습니다.
과연 누가 더 인간다운가? 은혜를 저버리는 사람인가? 목숨을 바쳐 은혜를 갚는 개인가?

1928년, 땅속에서 나온 비석


시간이 흘러 조선시대를 거쳐 일제강점기.
1928년, 전라선 철도 개설 공사가 한창이던 오수면 상리 천변.
인부들이 땅을 파다가 커다란 석비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오수의견비(獒樹義犬碑)


오랜 세월 흙 속에 묻혀 있던 비석이었습니다.
1923년 임실군지에는 “의견비가 있다”는 기록이 있었지만, 큰 홍수로 사라져 실체를 알 수 없었던 그 비석.
신기한 건, 발견 직전 상리 마을 한 주민의 꿈에 무언가 나타나 “나를 찾아달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정말로 그곳에서 비석이 나왔습니다.
더 신기한 건, 발견 당시 그 비석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 인부가 달라붙어도 움직이지 않던 비석은 마을 어르신들이 제를 올린 후에야 비로소 움직였다고 합니다.
1940년, 비석은 원동산공원으로 옮겨졌고, 1972년, 전라북도 민속문화재(현재 민속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비석에는 글씨가 마모되어 잘 보이지 않지만, 개의 발자국 같은 문양과 개의 상반신을 추측할 수 있는 신비로운 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마치 개가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처럼.

오수 의견비 *이미지 출처 : 지역N유산

현대의 오수 - 의견(義犬)의 성지


지금 오수면은 의견의 성지입니다.
오수의견관광지 : 애견 놀이터, 산책로, 의견비 공원
의견문화제 : 1982년부터 매년 5월 개최, 5만 명 이상 방문
오수개 연구소 : 1997년 설립, 오수개 복원 프로젝트
오수 펫 추모공원 : 국내 유일 정부지원 공공 반려동물 장례식장
오수휴게소 : 순천완주고속도로, 화장실에 대문짝만하게 쓰인 오수개 이야기

2024년 8월 30일, 오수개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가축다양성정보시스템에 정식 품종으로 등재되었습니다.
800년 전 죽은 개가,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오수에 가게 된다면


오수의견관광지에 가면 커다란 오수개 동상을 볼 수 있습니다.
원동산공원에는 의견비가 서 있고, 그 옆에는 500년 된 느티나무가 있었습니다(2011년 벼락으로 고사). 혹시 그 나무가 김개인이 꽂은 그 지팡이의 후손일까요?
의견비 앞에 서면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800년 전, 이름도 모르는 한 마리 개. 술 취한 주인을 구하고 죽은 개. 그 개가 한 고을의 이름이 되고, 기념비가 세워지고, 축제가 열리고, 품종이 복원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개가 정말 그랬을까? 과장된 전설 아닐까?”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중요한 건, 800년 동안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잊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아마도 우리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세상에는 정말로, 그렇게 순수하게, 그렇게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랑 앞에서는, 사람도 개도, 신분도 품종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본 사례는 구전된 실화에 기반하되, 일부 세부 정보는 출처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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