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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최초의 반려동물 - 신라 김지장과 개 선청(善聽)

by 캣츠닥스 2026.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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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가진 개, 그것이 시작이었다


백구, 황구, 검둥이, 바둑이. 우리가 흔히 개에게 붙이는 이름들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 이름이라기보다 색깔에 따른 분류일 뿐이다. 백구는 ‘흰 개’, 황구는 ‘누런 개’라는 뜻이며, 바둑이는 바둑판처럼 얼룩덜룩하다는 의미다. 누렁소, 얼룩소라고 부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동양 역사에서 개가 처음으로 고유명사인 이름을 가진 순간이 있다. 바로 통일신라 시대, 당나라로 유학을 떠난 왕자 출신 승려 김지장과 함께했던 개 ’선청(善聽)’이다. 이것이 동양 반려동물 문화의 진정한 시작이었다.

왕자, 개와 함께 길을 나서다


김지장(696~794년)은 신라 왕족 출신으로 알려진 고승이다. 일부 기록에서는 김교각으로도 불린다. 그는 출가 후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당시 당나라까지 가는 길은 험난했다. 바다를 건너야 했고, 낯선 땅에서 홀로 수행해야 했다. 외롭고 위험한 구도의 여정이었다.
김지장은 이 긴 여정에 동반자 하나를 데려갔다. 바로 개 선청이었다. ‘선청’이라는 이름은 ‘잘 듣는다’는 뜻이다. 단순히 집을 지키거나 사냥을 돕는 가축이 아니라, 함께 길을 가는 동반자로서 고유한 이름을 받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반려동물’의 개념과 정확히 일치한다.

호랑이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은 충성


김지장은 당나라 안휘성 구화산(九華山)에 도착해 수행처를 마련하고 도량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깊은 산속이었기에 야생동물의 위협이 끊이지 않았다. 김지장의 생애를 그린 ’지장구화수적도(地藏九華垂迹圖)’에는 선청의 충성스러운 면모가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어느 날 호랑이가 나타났다. 선청은 주인을 지키기 위해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몸집은 작았지만 기세는 당당했다. 이 장면은 단순히 개의 용맹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김지장과 선청 사이의 깊은 신뢰와 유대감을 상징한다.

지장보살 곁에 항상 함께 그려진 개


김지장은 후에 중국 불교에서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평가받는 고승이 되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있다. 김지장을 그린 수많은 그림과 조각에서 그의 곁에는 언제나 선청이 함께 묘사된다는 것이다.
지장보살은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이다. 그런 신성한 존재 곁에 개가 함께 있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김지장에게 선청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었다. 외로운 수행길의 동반자였고, 위험한 순간 자신을 지켜준 친구였다. 그래서 후대 사람들도 김지장을 기억할 때 선청을 빼놓지 않았던 것이다.

가축도 애완도 아닌, ‘반려’의 의미


선청 이전에도 개는 인간과 오랜 시간 함께 살았다. 하지만 대부분 집을 지키거나, 사냥을 돕거나, 짐을 끄는 등 실용적 목적이 있었다. 개는 영리한 가축이었지 가족은 아니었다.
선청은 달랐다. 김지장이 선청을 데려간 이유는 실용적 목적 때문이 아니었다. 외롭고 험한 구도의 길에 함께할 동반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선청은 단순히 주인을 따르는 개가 아니라, 같은 길을 걷는 존재였다.
’반려(伴侶)’라는 단어는 ‘짝 반(伴)’, ’짝 려(侶)’로 이루어져 있다. 말 그대로 함께 살아가는 짝이라는 뜻이다. 1983년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국제 심포지엄에서 공식적으로 ‘반려동물’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되었지만, 그보다 1200년 이상 앞서 김지장과 선청은 이미 진정한 반려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가 기억한 특별한 이름


동양 역사에서 개가 고유명사인 이름을 가진 기록 중 가장 이른 것이 바로 선청이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존재의 인정이기 때문이다.
색깔로 부르는 것은 분류일 뿐이다. 하지만 ‘선청’이라는 이름은 그 개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주인에게 그 개는 수많은 개 중 하나가 아니라, 대체 불가능한 유일한 존재였던 것이다.

천 년을 넘어 전하는 메시지


김지장과 선청의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적 일화가 아니다. 이것은 인간과 동물이 맺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관계의 원형을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는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곳에서 동물은 소유물이나 유희의 대상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김지장과 선청의 이야기는 천 년이 넘는 시간을 건너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정말로 그들을 ‘반려’로 대하고 있는가?

선청은 주인을 위해 호랑이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김지장은 선청을 평생의 동반자로 여겼다. 그 관계 속에는 주종관계가 아닌, 서로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있었다. 이것이 바로 동양 반려동물 문화의 시작이자, 지금도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다.




본 사례는 실화에 기반하되, 일부 세부 정보는 출처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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